유럽 선진국들의 GDP 대비 사회적 경제 비중이 10%를 상회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프랑스, 벨기에 등지에서 사회연대경제(SSE)는 단순히 ‘착한 기업’의 모임이 아닙니다.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고용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지역 소멸을 막는 강력한 경제적 엔진입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 엔진은 가동을 멈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화려했던 정치적 수사 뒤로 사회연대경제 기본법은 10년째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장의 숨통을 죄는 ‘예산 쪼개기’와 ‘삭감’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금융과 경제의 메커니즘을 관통하는 수석 에디터의 시각에서 볼 때, 현재의 상황은 단순한 정책의 우선순위 밀림이 아닙니다. 이는 국가가 구축해온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해체이자, 저성장 기조를 돌파할 자생적 생태계를 스스로 파괴하는 자가당착에 가깝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회연대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거시경제적 흐름과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1. 법적 근거 없는 항해: 기본법 표류가 가져온 제도적 공백
경제 주체가 장기적인 투자를 단행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입니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이 주축이 되는 사회연대경제 생태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사회연대경제 기본법’은 지난 19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여야의 정쟁 속에 표류하고 있습니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은 집을 지을 때 토대 없이 기둥만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법적 기반이 없으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기조가 180도 바뀝니다. 지속 가능성을 담보해야 할 사회적 가치가 정치적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 현장 관계자 인터뷰 중
기본법의 부재는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문제점을 야기합니다. 첫째, 부처별로 흩어진 사회적 경제 관련 사업들의 통합적 관리가 불가능해집니다. 둘째, 민간 금융 자본이 사회적 금융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습니다. 셋째, 공공조달 시장에서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제도적 인센티브가 힘을 잃게 됩니다. 이는 결국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자생력을 갖추기 전, 정부의 시혜성 예산에만 매달리게 만드는 ‘하향식 의존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2. ‘예산 쪼개기’와 삭감의 역설: 비용 절감이 아닌 손실의 시작
최근 정부의 예산 편성 기조를 보면 사회적 경제 관련 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이 눈에 띕니다. 효율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예산 쪼개기’식 배분으로 인해 현장의 사업들이 고사 직전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이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악수(惡手)입니다.

다음 표는 최근 사회연대경제 생태계가 직면한 예산 및 정책 환경의 변화를 요약한 것입니다.
| 구분 | 과거 정책 기조 (성장기) | 현재 상황 (위기기) | 경제적 영향 |
|---|---|---|---|
| 예산 배정 | 직접 지원 및 인프라 구축 확대 | 사업별 파편화 및 총액 삭감 | 고용 유지 능력 약화 |
| 법적 토대 | 기본법 제정 논의 활발 | 정치적 쟁점화로 무기한 연기 | 정책 연속성 및 신뢰도 하락 |
| 민간 협력 | 거버넌스 중심의 민관 협치 | 정부 주도의 일방적 지침 하달 | 현장 혁신 동력 상실 |
예산 삭감은 단순히 숫자의 감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담당해오던 돌봄, 교육, 환경 복구 등의 서비스가 중단됨을 의미합니다. 만약 이 공백을 정부가 직접 메우려 한다면, 사회적 경제 조직이 효율적으로 수행하던 방식보다 훨씬 더 큰 공적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산 절감의 역설’입니다.
3. 거시경제적 관점: 시장 실패의 보완재인가, 미래의 대안인가
현대 자본주의는 극심한 양극화와 환경 파괴라는 거대한 시장 실패에 직면해 있습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도 이제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회연대경제는 시장의 효율성과 공공의 이익을 결합한 가장 진화된 형태의 경제 모델로 평가받습니다.

- 내수 경제의 회복탄력성: 사회적 경제 조직은 지역 기반의 순환 경제를 지향합니다. 외부 충격에 취약한 글로벌 공급망보다 지역 공동체 내부의 결속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 구조는 불황기에도 강력한 버팀목이 됩니다.
- 질 좋은 일자리 창출: 단순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달리, 사회적 기업은 고용 유지를 최우선 가치로 둡니다. 이는 실업 급여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 혁신의 인큐베이터: 기존 시장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해 외면한 영역(예: 고령자 맞춤형 돌봄, 소규모 친환경 농산물 유통)에서 사회적 경제는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합니다.
이러한 거시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사회연대경제를 여전히 ‘정부 보조금을 축내는 약자들의 모임’ 정도로 치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어야 합니다. ESG 경영이 세계적인 표준이 된 지금,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주체들을 홀대하는 것은 글로벌 경제 트렌드에 역행하는 행위입니다.
4. 현장의 비명: 버티는 자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현장의 사회적 경제 활동가들은 “이제는 사명감만으로 버티기 힘든 수준”이라고 토로합니다. 예산이 쪼개지면서 인건비조차 충당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고, 청년 활동가들은 하나둘씩 현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인재의 유출은 산업의 미래를 앗아가는 가장 무서운 현상입니다.

사회연대경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버티기’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모순이 숨어 있습니다.
- 평가 지표의 획일성: 사회적 가치라는 무형의 성과를 측정하기보다, 단순한 매출액이나 고용 인원수 등 수치 위주의 평가가 현장을 압박합니다.
- 자금 조달의 병목 현상: 정부 지원금은 줄어드는데, 금융권의 대출 문턱은 여전히 높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담보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 금융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 거버넌스의 붕괴: 민과 관이 함께 정책을 설계하던 협의체들이 유명무실해지면서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통로가 막혔습니다.
5. 제언: 지속 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위한 세 가지 열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사회연대경제가 다시 우리 경제의 한 축으로 당당히 기능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지원이 아닌 구조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금융 에디터로서 제언하는 세 가지 핵심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회연대경제 기본법’의 조속한 제정입니다. 법은 단순한 종이 조각이 아닙니다. 국가의 정책 방향을 천명하는 선언이자, 민간 자본이 안심하고 흘러들어올 수 있게 하는 신뢰의 보증서입니다. 정쟁을 멈추고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법적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둘째, 사회적 금융 인프라의 고도화입니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 마중물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민간 임팩트 투자와 사회적 채권 발행 등이 활발해질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합니다. 스스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금융 체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셋째, 지역 중심의 자율적 생태계 강화입니다.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예산 배분에서 벗어나,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합니다. 지역의 문제는 지역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연대경제는 결코 시혜적인 복지 모델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가장 지적인 경제적 응답입니다. 현재의 표류와 예산 삭감이 한국 경제의 미래에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기기 전에, 우리는 이 멈춰가는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위기 속에서 버티고 있는 현장의 외침에 이제는 국가가 답할 차례입니다.